세계의 음식문화 한국의 음식문화
 
 

1.한국의 음식 문화의 특성


1) 한국음식

한국음식라 불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은, 그 음식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식생활 관습과 더불어 지리적·역사적 환경에 가정 적합하도록 우리 조상들이 창안·발전시켜 온 민족적 지혜의 총화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음식은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있어 기호에 맞고, 또 합리적인 음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생활 여건에 가장 알맞게 창안하여, 우리의 전통 문화와 함께 발전시켜 온 한국인의 음식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한국음식이라 하면 조선왕조 5백년 역사 속에서 왕실을 중심으로 내려온 궁중음식과 이를 근간으로 한 반가(班家)의 화려했던 반가음식과 일반 서민의 서민 음식, 그리고 고장마다 특색 있게 지켜져 내려온 향토음식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음식이 발달 전승되어 오늘날에는 나름대로 과학성과 필연성이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한국음식문화를 이해하며 이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합니다.


2) 한국 식생활문화의 특징

사계절이 확연하게 구분되고 여름엔 고온 다습한 한반도의 기후적 특성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전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산(山)으로 되어 있는 지리적 여건이 우리의 식생활에 그대로 반영되어 한국음식의 특징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여름의 고온 다습한 기후는 작물 생산에 있어서 미작중심의 쌀농사를 가능케 하여, 쌀밥을 주식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쌀밥을 주식으로 함에 따라 이에 따른 부찬으로써 밭에서 갖가지 소채류를 재배하여 이용하게 되고 굴곡이 많은 해안에서 조개류를 비롯하여 갖가지 어류·해조류를 채취하여 여러가지 찬을 만들어 부식으로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와 지리적 특성이 한국음식의 가장 큰 특징인 주식과 부식 확연히 구분하는 특징을 이루도록 한 것입니다.
또 역사적·사회적 환경이 식생활에 미친 영향을 보면, 조선왕조시대에는 반상(班常)을 엄격히 구분하는 계급의식과 장유(長幼)와 남녀를 차별하는 서열의식이 강했고 이로 인해서 음식을 한두 가지씩 차례로 먹는 중국이나 서구(西歐)의 시간전개형 (時間展開形) 식사법과는 달리 모든 음식을 한 상에 차려놓고 먹는 공간전개형 (空間展開形) 식사법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타나게 된 한국음식의 특징을, 한국음식자체가 갖는 특징과 식생활제도상의 특징으로 크게 나누어서 각각 살펴보면 대개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1) 한국음식문화 자체의 특징

① 주식과 부식이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부식의 구분이 애매한 서양음식나 중국음식와는 달리, 쌀·보리·조 등으로 지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채소·해조·어패·수조육·콩류로 만든 갖가지 반찬을 부식으로 합니다.
이에 따라 부식의 가짓수가 많습니다.

② 곡물류의 가공·조리법이 다양하게 발달하였습니다.
곡류를 주식으로 할 수 있도록 생산량이 많아 이를 이용한 국수·죽·떡과 술·간장·두부·엿·유과류·식혜 등이 다양하게 조리되어 식생활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③ 저장식품이 발달하였습니다.
사계절의 기후가 뚜렷하게 차이가 나므로 각 계절에 많이 생산되는 음식을 중심으로 가공·저장하는 다양한 식품저장방법이 전래되었습니다. 김장을 비롯하여 계절마다 먹을 수 있는 젓갈·장아찌·육포·어포가 각 고장과 가정마다 저장식품으로 크게 발달되었습니다.

④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중히 여깁니다.
하루 세 끼니라는 말이 의미하듯 1일 3식을 원칙으로 하고, 생일잔치와 그 밖의 잔치에서 아침에 축하연을 베풀었음은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전통적 식생활의 풍습에서 연유합니다. 이는 사회 산업 경제구조와 연관된 것으로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아침시간의 시간적인 여유와 식사 후 신체활동 등의 배분을 고려할 때 아침식사에 대한 중점도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점심보다는 저녁을 잘 차려 먹었습니다. 격한 노동을 할 때는 세 끼니 외에 새참을 곁들여 1일 5식의 식단도 짜지만 일상 식생활 전반을 보면 1일 3식이 원칙이고 점심보다는 아침과 저녁을 중요시 했습니다. 이러한 식생활 습관은 산업사회와 도시중심의 생활이 발달해가면서 아침을 경시하는 풍조로 바뀌어 가게 되었습니다.

⑤ 절후에 따라 시식(時食)을 즐깁니다.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고 계절에 따른 산물이 다르고 농경인으로서의 신앙적 의례행사가 이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어 절기마다 색다른 음식을 즐겼습니다.

⑥ 자극적인 음식을 즐깁니다.
국물 있는 뜨거운 음식을 즐기는 한국인은 또한 강한 향신료를 좋아합니다. 즉 이는 맛이 담백하고 단순한 쌀밥위주의 식생활에 있어 음식섭취간 맛의 조화면에 있어서(조화면에서) 부식은 강한 맛을 요구하게 된데 기인합니다. 즉, 고춧가루·마늘·생강·겨자·파 등이 음식마다 거의 쓰이고 있는데 이들 양념은 식욕을 돋아 주는 한편 음식의 저장 보존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향신료는 소화기관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결점도 있으나 6,7종이 섞이는 복합적인 양념의 맛 자체가 특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⑦ 간을 중요시 여깁니다.
맛의 기본이 되는 소금과 장류(醬類)를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장맛을 보면 그 집안의 음식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간장·된장·고추장은 한 집안 식생활의 전모를 대변해 주는 것으로 여겨 장 담그기는 전통적인 비법(秘法)으로 전해 오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주부들이 가장 알뜰하게 정성을 기울이는 저장식품이기도 합니다.

⑧ 약식동원(藥食同源)
음식은 몸을 보(補)하고 병을 예방하거나 회복을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식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을 중요시하였으며, 약재(藥材)가 음식에도 어울려 사용되었습니다. 생강·계피·쑥·당귀·오미자·구기자·박하·더덕·도라지·율무·모과·석류·유자·인삼 등이 들어 있는 음식이 다양하게 전해내려 오고 있습니다.

(2) 식생활 운영상의 특징

① 대가족 중심의 가정에서 어른을 중심으로 모두가 독상(獨床)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릇과 밥상은 1인용으로 발달해왔습니다.

② 음식은 처음부터 상 위에 전부 차려져 나오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이는 5첩·7첩·9첩 반상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낳게 했습니다.

③ 식사의 분량이 그릇에 중심이었습니다.
상을 받는 사람의 식사량에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채우는 것이 기준이었으므로 음식을 남기는 일이 허다하였습니다. 이는 과거 궁중과 반가의 울림상이 발달된데 근거합니다. 즉 조선시대에는 식생활문화에 있어서 유교의례를 중요시하는 상차림이 발달하였습니다.